[경제 포커스] 좁은 세원, 높은 세율?

입력 2020-09-14 17:48   수정 2020-09-15 00:10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소득세 과세표준 10억원 초과구간을 신설해 최고세율이 42%에서 45%로 인상된다. 2017년 과세표준 5억원 이상에 대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인상한 지 3년 만에 또다시 세율을 높인 것이다.

경제부총리는 발표문에서 세법개정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사회적 연대와 과세 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세법개정을 통한 세수 증가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많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설명이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일관된 의견을 보여주고 있는 여권의 행태를 고려하면 정부가 예고한 세법개정안은 통과될 것이 확실시된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실제 소득세율은 49.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소득세 최고세율 43.3%보다 6%포인트가량 높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이고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인 국가들의 모임 ‘3050클럽’에서 일본,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고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보다 높다.

OECD 국가의 2010년 이후 지방세를 포함한 소득세 최고세율의 증가율을 조사한 한국경제신문(8월 31일자 참고)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11%포인트 상승해 리투아니아의 12%를 제외하고는 가장 인상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리투아니아의 경제 규모는 한국 경제와 비교하기엔 너무 작고 소득세 최고세율도 27%라는 점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한국이 가장 가파르게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한 국가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소득세율 개편안 작업을 하면서 그 흔한 공청회와 사회적 의견 수렴 과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세표준 10억원 이상 구간에 해당하는 인구가 대략 1만6000명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다.

한국의 고소득층 조세부담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득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1.4%를 차지하는데 전체 소득세의 41.8%를 납부하고 있다. 소득 상위 1%의 조세부담 비중이 미국 38.4%, 일본 38.6%, 캐나다 23.4%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전체 소득의 36.8%를 차지하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 납부액의 78.5%를 부담하고 있다. 미국이 70.1%, 영국과 캐나다가 각각 60.3%, 55.2%로 상대적으로 격차가 크게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기준 근로소득세 면세자는 722만 명이고 전체 근로자의 38.9%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 2017년 41%에 비하면 약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근로소득자의 약 40%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납부하지 않는다. 근로소득 면세율이 2.1%인 영국, 각각 15.5%, 30.7%인 일본,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소득세 면세율은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래퍼곡선 이론에 의하면 정부의 조세수입을 극대화하는 적정세율 수준보다 세율이 낮을 때는 세율 증가가 조세수입을 증가시키지만, 적정세율을 초과해 세율을 계속 높일 경우 경제주체들이 일할 동기가 줄어들어 생산 활동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탈세에 대한 유인이 커지므로 세율이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조세수입은 감소한다.

어느 국가든지 소득세는 기본적으로 누진세의 구조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납부하는 세금이 급속하게 증가하게 마련이다. 근로소득자 10명 중 4명이 소득세를 전혀 부담하지 않으면서 소수 특정계층의 조세부담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과세형평성에 맞지 않고, 사회적 연대 강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개세주의에 입각해 국민 누구라도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적게 벌면 적게 내고 많이 벌면 많이 내는 것이 합리적이고 형평성에도 맞다. 생존이 어려운 계층은 국가가 리펀드해주는 방식으로 보조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절반을 무조건 세금으로 국가에 빼앗긴다면 누가 열심히 일할까. 또 조세회피에 대한 유혹을 피할 수는 있을까.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과세의 기본원칙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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